30분 뒤에

나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영희를 안심시키며 어깨를 두드렸다.

"30분 뒤에 전화할게"

영희는 이빨 사이로 낮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무리도 아니다. 내가 들고 있는 검은색 가방속의 돈은 20억이란 거액이다.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가도 만져보지 못할 액수인 것이다.

"오빠! 이게 내 전재산이야..이번에도 실패하면..우린...우리는...흑!"

그녀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한 큰 눈을 굴리며 애절한 목소리로 나에게 호소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만 콧시울이 시큰해졌다.

"걱정 마. 다 잘 될거야."

검은색 모범 택시 운전수가 아까부터 담배를 태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더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었던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택시에 훌쩍 올라탔다.

"공항으로 갑시다."

택시 운전수는 담배를 껌 씹듯이 질겅질겅 씹으며 차를 몰기 시작했다. 백미러에서 영희의 모습이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백미러를 보는 모습을 바라보던 택시 운전 기사가 물었다.
"댁 애인이슈?"

애인? 그럴수도 있다. 나는 약간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애인 아닙니다. 그냥 아는 동생이지요. 지금은 사업 때문에 잠시 헤어지게 됐습니다. 근황이 별로 좋지 못해서요"

"그려. 요즘 경기가 좋지 않긴 하지. 이 빌어먹을 정부 탓이여"

공항으로 가는 길은 길었지만, 택시 기사와 나는 한참을 대화 없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싫어한다. 무언가 답답하게 내리 누르는 기분.

"저기..혹시 10억이란 돈이 생기면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택시기사가 놀랐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 그야 10억 생기면 그저 땅이나 살걸세. 요즘 땅만 사면 부자 되는건 시간 문제여."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아마 거울로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얼굴 한 쪽이 뒤틀린 괴물 같을 것이다.

"혹시 제가 10억을 아무 조건없이 주겠다면 받으시겠습니까?"

"뭐여?"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이 가방속에 20억이란 돈이 있는데 그중 반은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열어 보여 그에게 내가 20억이란 돈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얼빠진 얼굴로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운전대를 다잡았다.

"세상에 아무 이유없이 10억을 주겠다는 사람이 어디있어?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말게!"

"농담이 아니라면요? 저는 당신에게 10억을 주고 싶습니다"

그렇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내 돈의 반을 떼주고 싶었다. 한번 보고 싶었다. 아무 이유없이 거액을 손에 넣은 사람의 표정을.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당신 솔직히 말해봐. 이거 강도짓 해서 벌은거여?"

"아닙니다. 이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제가 받은 돈입니다."

택시기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참으로 알 수가 없구먼, 도대체 아무 이유없이 그런 거액을 주겠다는 의도가 뭔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새에 공항에 도착했다. 아마 이 택시기사는 아직도 내가 농담을 하고 있는 줄 알 것이다.

나는 가방 속에서 정확히 10억을 꺼내서 뒷 좌석 바닥에 놓은 다음 내렸다. 뒤에서 운전기사가 고함 치는 것을 무시하고 공항 로비로 들어섰다.

돈을 낭비한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1분 남았군."


나는 핸드폰을 이용해 영희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영희야 미안하다. 내가 돈이 필요한 것을 어쩌겠니.
다 니 팔자라고 생각해라. 이 돈은 내가 마구 낭비해 줄 테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말도록. 이 메세지를 들을 때 쯤이면 나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 거야. 안녕"

지금껏 나는 남을 짓밟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메세지를 들을 영희를 상상하니 너무 웃기고 재미있다.
남의 불행은 내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