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가 현실인가?




나는 좁은 복도를 질주하고 있다.그들이 뒤쫓아 온다.사람크기만 한 거대한 생선들.

펄떡 펄떡 뛸때마다 내장부스러기가 꽁지에서 떨어진다. 번들번들해야 할 눈은 썩어서 문드러지고 심한 악취가 복도에 진동한다.그들의 딱딱한 비늘이 복도의 나무 벽을 긁을때마다 듣기싫은 소음이 길고 크게,마치 늑대의 울부짖음 처럼 긴 여운을 남기며 내 귀를 쑤신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나를 잡으려고 하는 듯이 보인다.나를 잡으려는 것이 그들의 삶의 전부인 것처럼. 그 증거로 그들은 좁은 복도를 가득 메꾸고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벌써 썩어 문드러졌어야 할 눈알은 정확하게 오로지 나만을 보고 있다.

도대체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식인 생선에 관한 이야기는 몇번 들은 기억이 있지만 저렇게 몸이 썩은 상태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썩은 물고기 따위가 누구에게 명령이라도 받은 듯 나를 필사적으로 쫓아오다니..

나는 어째서 여기 있는가? 나는 언제부터 이 복도를 달리고 있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째서 저 괴상한 생물들에게서 도망쳐야 하는가?
답답하다. 머리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다. 하긴 내가 누군지 알 정도라면 그나마 제정신이라도 차릴 수 있다는 건데 이 상황에서 그럴 여유는 당연히 있을리 없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저들이 나에게 좋은 목적을 가지고 쫓아올리는 없다는 것이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앞으로 질주하는 것이다.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이곳을.이 나무 복도를...(내가 보기엔 이 나무도 저 물고기들과 똑같이 썩어버린 듯 보인다. 가끔 달리다가 나무 바닥이 부러져 푹푹 빠지는 곳이 있다)

머리속이 혼란스럽다. 몸은 뇌에게서 오로지 달리는 것만 명령받은 듯 정확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복도를 치달리고 있다. 코는 역겹고 썩은 비린내에 마비되어 버리고 내 귀는 썩은 살끼리 부딪히는 치덕대는,역겨운 생선들의 추격 소리를 감지해 내면서, 내 뇌에 계속 위험을 알리고 있다.폐속까지 비린내와 무겁고 썩은 공기가 가득 찬 듯 나의 목은 빠르게 할딱거리며 더러운 공기를 계속 흡수하고 내뱉는 작용을 한다.허공을 빠르게 휘젓는 두 손이 납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도대체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가?. 나는 계속 이대로 달려야만 하는가? 저 생선들에게 내가 잡히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지? 그리고 제일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이 빌어먹을 나무 복도의 종점은 도대체 언제 나타나는가!

나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멈출까? 멈춰버릴까? 정말 멈출까?
포기 하고 싶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싶다.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 현실인지 아닌지 모를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 햇빛을 보고 싶다.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듣고 싶다.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다. 간식을 먹고 싶다.시원한 물 한잔을 먹고싶다.마구 비명을 지르고 싶다!!

나의 이런 잡념들은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쫓아오는 생선들을 볼 때에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이제는 뻐끔대는 입에서 '쿠웨게게게겍'같은 사람이 토를 할때 하는 비슷한 소리까지 내면서 해일처럼 복도를 메우며 마구 밀려오고 있다.
아아 제기랄. 신이 있다면 당장 여기를 보지 않고 어디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상황에선 저 물고기들의 신이 내가 믿는 신보다 ,현재 상황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강하기라도 하단 말인가.

나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머리가 느끼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의문과 혼란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또다른 내가 저 하등한 생물들에게 쫓기는 나를 비웃고 있다.
썩은 생선......썩은 생선.......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썩었다. 썩었다. 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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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4 적어놓았던 글의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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